비오 9세(Bio IX)는 교황청의 제259대 교황으로, 본명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셀리니(Vittorio Emanuele Selini)이다. 그는 1800년 6월 13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846년 6월 16일 교황으로 즉위했다. 비오 9세는 교황 직을 수행하는 동안 이탈리아와 유럽에서의 정치적 변화와 갈등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그의 재임 기간은 31년으로, 교황청 역사상 가장 긴 재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비오 9세는 교황 즉위 이후, 교황청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는 교회 내에서의 개혁을 진행하고 신학적 논란들을 다루기 위해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다. 이 공의회는 1869년부터 1870년까지 진행되었고, 교황의 무류성과 교회의 교리에 대한 확립이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이러한 결정은 교황청의 권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후에 가톨릭 교회 내부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반제회와 같은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교황청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1870년, 이탈리아 정부가 로마를 점령하면서 비오 9세는 그 지역에서 권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바티칸에 고립되어 궁극적으로 교황군의 약화와 교황청의 정치적 위치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비오 9세는 또한 그 당시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가 취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여러 사회복지 사업과 교육 기관을 설립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교회가 단순한 종교 기관을 넘어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기여하였다. 비오 9세는 1878년 2월 7일 사망하며 그의 정치적, 사회적 유산은 이후의 교황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